S STORY 

황금빛에서 회색으로

점점 옅어지는 아기 대변 색깔,

담도폐쇄증의 경고 신호

정교한 수술로 어린 환자들의 일상 회복 돕는 인경 교수


인경 교수 프로필 바로가기


담도폐쇄증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익순이가 앓았던 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질환이며, 왜 생기는 건가요?

담도폐쇄증이라는 진단명처럼 담즙의 통로인 담도가 막힌 질환입니다. 일반적으로 성인에서 나타나는 담도폐쇄는 간에서 소장까지 이어진 담도 가운데 어느 한 길목이 결석이나 종양 등 후천적 원인에 의해 막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면 신생아의 담도폐쇄증은 담도가 출생 직후부터 막히는 선천성 질환으로, 어느 한군데가 아니라 마치 불에 타서 바짝 마른 나무줄기처럼 담도 내부 곳곳이 막히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출생아 1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입니다. 발병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이라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 감염, 모체와의 혈액학적 관계 등 아직 규명되지 않은 어떤 원인 때문에 면역반응이 항진되면서 담도를 공격해 기능을 점차 상실해가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담도가 출생 직후부터 막히는 병이라면 아주 어린 아기에게서 곧바로 문제가 나타나나요? 엄마 아빠들은 어떤 증상을 눈여겨봐야 할까요?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은 담도를 통해 소장으로 분비돼 소화를 돕는 데 사용됩니다. 그런데 담도가 막히면 담즙이 분비되지 못하고 간에 정체되면서 간 손상을 일으키고 간경변증으로 진행됩니다. 담도폐쇄증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은 태어난 지 한두 달밖에 안 된 어린 아기한테서 나타나는 황달과 회색빛 대변입니다. 그러나 신생아에서 황달은 아주 흔한 증상으로 모유 수유만 해도 나타나기 때문에 자칫 위험 신호를 놓치기가 쉽습니다. 기저귀에 묻어나는 아기의 변 색깔을 확인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아기한테 황달이 나타나고 대변 색깔이 황금색에서 회색이나 흰색으로 점차 창백해진다면 즉시 소아과나 소아외과 전문의를 찾아 담도폐쇄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생후 1-2개월이면 너무 어린 아기라 진단을 위한 검사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담도가 실제로 막혀 있는지 확진하기 위해서는 수술실에서 시행하는 담도조영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태어난 지 60일도 안 된 아기에게는 부담이 큰 검사여서, 먼저 혈액검사로 직접 빌리루빈 수치를 확인해 담즙이 정체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복부 초음파나 MRI 등의 영상 검사를 시행합니다. 이러한 검사를 통해 담도폐쇄증이 강하게 의심되면 수술실에서 전신마취 후 담도조영술과 함께 치료를 위한 카사이수술을 시행합니다.


카사이수술은 어떤 수술인가요? 수술 없이 약물로 아기의 막힌 담도를 열어줄 순 없나요?

현재로선 막힌 담도를 약물로 치료하는 건 불가능하고, 진단 즉시 최대한 빨리 카사이수술을 시행하는 것이 아기의 간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카사이수술은 담도-소장 문합수술로, 간 외부의 막힌 담도를 잘라내고 간과 소장을 직접 연결해 담즙이 소장으로 원활하게 배출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담도폐쇄증이 있으면 생후 3-4개월만 지나도 간기능이 많이 나빠져서 회복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빠른 진단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또 카사이수술 후에도 반복적인 담도염과 담즙 정체로 간 손상이 발생할 수 있어서 꾸준한 추적 관찰이 필요하며, 간기능이 떨어지면 주치의와 상의해 적당한 시기에 간이식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카사이수술로 막힌 담도를 해결했는데도 간기능이 다시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카사이수술로 간 외부의 담즙 흐름을 열어주더라도 간안의 좁아진 담도는 흉터처럼 계속 남아 있어서 담즙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카사이수술 후 담즙 배출이 원활하다면 간이식 없이도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겠지만, 카사이수술 전에 이미 간섬유화가 상당히 진행되었거나 간내담도가 많이 손상된 아이들은 카사이수술 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간이식을 받아야 합니다. 대체로 담도폐쇄증 환아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생후 1-2년만에 간이식을 고민해야 하는 단계로 진행되고, 열 살쯤 되면 절반가량의 환아들이 간이식을 받게 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18세 미만 소아청소년에서 간이식수술을 하게 되는 원인은 담도폐쇄증으로 인한 간경변증이 50% 이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카사이수술과 간이식수술이 시행되면서 담도폐쇄증 환아들의 장기 생존율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엄마 아빠들은 그래도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간이식을 받는 게 좀 더 안심될 것 같은데요. 간 손상을 예방하거나 최대한 늦출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담도폐쇄증 환아에서 가장 흔하면서 심각한 합병증은 담도염으로, 담즙 정체와 장내 세균 감염 등이 원인으로 추정됩니다. 담도염은 간섬유화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므로 최대한 빨리 항생제 치료를 해서 담도염이 진행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담도폐쇄증 환아에서 기침이나 설사, 구토 등의 증상 없이 열이 난다면 담도염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으므로 이럴 때는 지체 없이 병원에 와서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평소에는 담즙 흐름이 원활하도록 돕는 약제나 지용성 비타민 등 주치의의 처방약을 잘 복용해야 하고요. 또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꾸준한 검진으로 간기능을 체크하고, 간경변증이 진행되면 위정맥류나 식도정맥류, 간폐증후군 등 합병증의 발생 여부도 점검해야 합니다.


소아 환자들의 간이식 후 관리는 어떤 부분이 특히 중요한가요?

소아는 성인에 비해 인체 구조가 훨씬 작으니까 어떤 수술이든 수술 자체가 까다롭고 수술 후 합병증의 위험이 높습니다. 또한 약물이나 검사의 필요성을 잘 받아들이지 못해 치료 과정에서 어린 환자의 협조를 얻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어린 환자가 자신의 증상이나 몸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고 표현하는 것도 어렵고요. 그래서 의료진이 환자를 좀 더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특히 담도폐쇄증 환아들은 담즙 분비가 적고 간기능이 나쁘기 때문에 키가 잘 안 자라거나, 비타민이 결핍된다거나 뼈 건강이 안 좋은 경우가 있어서 간 이식 후 아이가 제 나이에 맞게 적절한 영양으로 성장하고 있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간이식 후 성인 환자들은 이식 간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혈중 면역억제제 농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부작용을 관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소아 환자에서는 아이의 성장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것이지요.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은 아이에게 간이식이 고려되는 시기부터 간이식 후 성인이 될 때까지 소아간이식클리닉의 다학제 진료를 통해 환아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소아간이식클리닉의 다학제 진료는 주로 어떤 과들이 함께하며, 환자에게 어떤 이점이 있나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는데, 한 아이를 치료할 때도 여러 사람들의 마음과 노력이 모아져야 합니다.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간이식클리닉의 다학제 진료가 바로 이런 노력의 하나입니다. 이식을 집도하는 소아외과와 이식외과뿐 아니라 이식 전후 간 건강을 관리하는 소아소화기영양과, 감염 관리와 예방접종을 맡는 소아감염면역과, 간이식 후 생길 수 있는 신장기능의 변화를 살피는 소아신장과 등이 함께합니다. 여러 과의 의료진이 매주 한 번씩 한자리에 모여 함께 진료하니까 환자와 보호자가 개별 과를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 시간과 비용이 절약됩니다. 또 무언가 우려스러운 증상이 나타나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최적의 해결책을 찾아주고 집중적으로 아이를 살피기 때문에 보호자들의 만족도가 높습니다.



 

인경 교수

소아외과

프로필 바로가기


소아 장기이식(간, 신장), 담도폐쇄증, 선천성 기형 등 어린 환자들의 수술치료를 맡고 있다. 같은 질병으로 같은 수술을 해도 아이들의 회복과 성장 과정은 각양각색이라 인경 교수는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수술실에 들어간다. 수술은 의사가 하지만 어린 생명을 치유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수술 케이스가 늘어갈수록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고. 힘든 치료를 견디고 잘 회복해서 엄마 아빠 손 잡고 진료실을 나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이 의사로서 가장 큰 보람이자 행복이다.

 


월간 <세브란스병원> 2023년 05월호

에디터 박준숙 포토그래퍼 최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