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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성 혈관부종,

정확한 진단이 치료 첫걸음

알레르기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따듯한 동반자 박경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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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성 혈관부종이란 어떤 질환인가요? 혈관이 붓는 건가요?

혈관부종은 일시적으로 혈관의 세포들이 확장되면서 혈관 내의 체액이 빠져나가 주변 조직에 고여 심부진피나 피하조직, 점막 등이 부어오르는 증상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혈관부종은 비만세포에서 분비하는 히스타민에 의해 발생하는 알레르기성 혈관부종으로, 피부가 벌게지면서 가려운 두드러기 증상을 동반합니다.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로 치료하고요.


그러나 유전성 혈관부종은 히스타민이 아닌 브라디키닌(bradykinin)에 의한 부종으로, 유전적으로 C1 에스테르 분해효소 억제제(C1 esterase inhibitor, C1-INH)가 결핍되거나 그 기능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희귀질환입니다. 알레르기성 혈관부종과 달리 피부 두드러기가 동반되지 않으며,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 치료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희귀질환이라면 국내 환자 수는 얼마나 되나요?

북미나 유럽과 달리,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는 유전성 혈관부종에 대한 연구가 적어 정확한 유병률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2018년 국내 3차병원 알레르기내과 전문의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총 65명의 환자가 확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고, 2019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서는 81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이는 실제 이 병을 가진 환자 수가 증가했다기보다는 최근 몇 년 사이 유전성 혈관부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검사를 좀 더 적극적으로 시행해서 숨겨져 있던 환자가 발견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환자 수는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전성 혈관부종은 다른 혈관부종과 구분할 만한 특징적인 증상이 나타나나요? 주로 어떤 상황에서 인체의 어느 부위에 부종이 발생하나요?

발치나 임플란트, 위내시경검사, 외상 등 인체에 직접 자극이 가해졌을 때, 감기에 걸린 이후, 과도한 스트레스, 호르몬 변화가 있는 생리 기간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부종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환자마다 부종의 발생 부위, 상황, 빈도, 지속 시간 등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두드러기가 동반되지 않는 부종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주로 생식기, 눈가나 입술을 비롯한 안면부, 손과 발 등 피부가 얇은 곳에서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위장관 점막부종으로 인한 경련성 급성 복통, 목(후두부)의 점막부종으로 인한 목소리 변화나 급성 호흡곤란 등을 겪는 환자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증상은 일시적으로 일상에 불편을 초래하는 데 그치지만, 후두부 점막부종은 급성 호흡곤란으로 이어져 생명에 위협이 되고 뇌손상 같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습니다.  두드러기를 동반하지 않는 부종이 반복되는 경우, 혈관부종 가족력이 있거나 어린 나이에 증상이 시작돼 지속되는 경우, 부종의 원인이 불명확한 경우,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 에피네프린 같은 일반적인 혈관부종 치료제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에 유전성 혈관부종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진단 과정이 복잡하지는 않은가요? 어떤 검사가 필요한가요?

환자의 병력에서 유전성 혈관부종이 의심되면 혈액검사로 C1 에스테르 분해효소 억제제의 농도와 기능을 평가해 진단할 수 있습니다. 진단 방법이 까다로운 건 아니지만, 환자 수가 워낙 적다 보니 환자들은 물론 의료진들도 유전성 혈관부종에 대한 인식이 낮아 진단이 늦어진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환자들이 증상에 따라 소화기내과나 이비인후과 등 여러 과를 다니면서 임시방편식의 치료만 받는다거나, 일반적인 알레르기 치료제를 사용해도 증상이 금방 나아지질 않아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 기회를 놓치기도 합니다. 위장관 점막의 반복적인 부종으로 복통을 자주 경험하는 환자가 여러 검사를 해봐도 소화기계에서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니까 꾀병으로 취급받았다는 경우도 있고요. 늦은 진단이 이 질환의 치료에 가장 큰 걸림돌인 셈이지요. 환자들이 반복적인 혈관부종으로 여러 번의 힘든 상황을 겪다가 확진을 받기까지 평균 8년이 소요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전질환인데, 혹시 부모님에게 유전성 혈관부종이 없는 경우에도 이 병이 생길 수 있나요? 유전자검사를 꼭 받는 게 좋을까요?

유전성 혈관부종은 C1 에스테르 분해효소 억제제를 만들어내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하는데, 이 유전자는 변이에 취약해서 전체 환자의 20-25%는 가족력 없이 새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상염색체 우성으로 유전되는 병이어서 부모 중 한 사람이 유전성 혈관부종이 있을 때 자녀가 이 병을 가질 확률이 50%입니다.


그래서 환자가 확진을 받으면 직계가족 모두 유전자검사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진단이 늦어질수록 환자의 삶의 질이 저하되고, 무엇보다 급성 악화가 일어났을 때 적절한 대처가 늦어져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전성 질환은 환자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가족들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부종을 가라앉히는 약을 복용하나요?

유전성 혈관부종 치료는 장기 예방요법, 단기 예방요법, 급성 악화 시 응급대응치료, 총 세 갈래로 치료제를 사용합니다. 장기 예방요법은 평소 질병 조절을 위해 꾸준히 투여하는 약제로, 현재 국내에서는 다나졸이라는 남성호르몬제제를 사용 중입니다. 그러나 이 약은 여러 부작용이 있고 특히 가임기 여성 환자에서는 사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C1 에스테르 분해효소 억제제를 직접 공급해주는 보다 근본적인 기전의 경구약제나 주사제가 국내에 도입될 예정입니다.


단기 예방요법은 발치나 내시경검사 등 혈관부종의 급성 악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예방적으로 미리 복용하는 약제입니다. 급성 악화 시 응급대응치료는 말 그대로 일상생활 중 심각한 급성 부종이 발생했을 때 가라앉히는 약제로, 인슐린 주사처럼 환자가 직접 자기 배에 주사를 놓는 방법입니다.



희귀질환이라 환자들은 걱정과 불안이 클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 어떤 걸 조심해야 할까요?

특별히 금지되는 건 거의 없고, 몇 가지 지켜야 할 수칙이 있습니다. 수술이나 내시경검사, 발치 등 인체에 자극이 되는 검사나 치료가 예정되어 있다면 반드시 사전에 알레르기내과 주치의에게 진료와 상담을 받도록 합니다. 응급 발작의 위험이 높은 치과 치료를 줄일 수 있도록 평소 치아 관리를 잘하는 것, 위염이 덜 생기도록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는 것 등 평소 꾸준한 건강관리가 증상을 잘 다스리는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여행을 갈 때는 급성 악화 시 사용하는 비상약과 주사기를 여유 있게 챙겨가도록 하고요. 또 부작용이 있다고 임의로 약을 끊지 말고 주치의와 상담하기를 권합니다.


유전성 혈관부종은 제때 진단만 받으면 급성 발작으로 응급실에 내원하는 일이 거의 없고, 적절한 치료로 일상의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두드러기를 동반하지 않는 부종을 반복적으로 경험했다면 반드시 알레르기내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아보기를 권유합니다.




✅ 알아두면 쓸데있는 유전성 혈관부종 핵심 정보

- 원인 :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로 C1 에스테르 분해효소 억제제가 결핍되거나 그 기능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희귀질환

- 주요 증상 : 팔다리, 안면부, 생식기 등의 반복적인 부종, 위장관 점막부종으로 인한 경련성 급성 복통, 후두부의 부종으로 인한 목소리 변화나 급성 호흡곤란

- 특징 : 부종의 발생 빈도나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우며 증상이 급격히 진행, 알레르기성 혈관부종과 달리 피부 두드러기 없이 부종만 발생

- 치료 : 장기 예방요법, 단기 예방요법, 급성 악화 시 응급대응치료

- 일상생활 수칙 : 발치를 비롯해 인체에 자극이 주어지는 치료나 검사가 예정되어 있다면 반드시 먼저 알레르기내과 주치의와 상담하기



월간 <세브란스병원> 2023년 3월호

에디터 박준숙 포토그래퍼 최재인